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영화 유전 분석 (상징주의, 캐릭터 해석, 내러티브 구조)

by cdh9100 2025. 11. 12.

영화 유전(Hereditary)의 일러스트 이미지

 

영화 유전(Hereditary)은 2018년 아리 애스터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전통적인 공포 장르의 틀을 벗어나 관객의 심리를 정교하게 파고드는 독창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습니다. 겉보기엔 오컬트와 귀신의 존재를 다룬 호러 영화 같지만, 그 내면에는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 숨겨진 상처와 고통, 억눌린 분노와 상실의 감정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특히 이 영화는 ‘유전’이라는 제목 그대로, 외부의 위협이 아닌 세대 간 전이되는 트라우마, 통제할 수 없는 운명적 흐름을 공포의 본질로 삼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이 작품의 상징주의 해석, 주요 캐릭터 분석, 서사 구조의 불가항력성에 중점을 두고, 단순한 감상문을 넘은 분석적 리뷰를 제공하겠습니다.

상징주의로 본 유전의 공포

유전은 장면 하나하나가 의미심장한 상징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감독 아리 애스터는 직설적인 공포보다는 서사 속에 은유와 상징을 촘촘히 배치하여, 관객이 무의식 중에 불안함을 느끼게 만드는 방식을 택합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애니가 제작하는 미니어처 작품들입니다. 그녀는 현실에서 느끼는 무력감과 상실을 조그만 축소판을 통해 재현하며, 마치 자신의 삶을 다시 통제하려는 강박적 시도를 보입니다. 미니어처는 영화의 전체적인 구조를 은유하기도 합니다. 주인공 가족은 자신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다고 믿지만, 실상은 더 큰 힘에 의해 조종당하는 존재들이며, 결국 인형극처럼 운명에 의해 움직입니다.

또 하나의 핵심 상징은 파이몬의 인장과 의식 관련 오브제들입니다. 이들은 단순한 무속적 장치가 아니라 영화 전체의 주제를 응축한 심벌로 기능합니다. 이 인장은 찰리의 스케치북, 장례식장, 벽면, 목걸이 등 곳곳에 배치되어 있어 관객이 무의식적으로 ‘이 가족은 이미 예정된 운명을 따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만듭니다. 특히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참수(Decapitation)' 장면은 물리적인 충격을 넘어, 상징적으로 ‘세대 단절’과 ‘신체의 불완전함’을 표현합니다. 찰리, 애니, 조안까지 이어지는 이 전통은, 단순히 육체적 공포가 아니라 가족과 인간성의 붕괴를 상징합니다.

영화 후반부의 집 구조 역시 상징적입니다. 다락방은 과거의 비밀이 봉인된 공간이며, 마지막 장면에서 찰리가 파이몬으로 재탄생하는 제단은, 곧 인간의 이성과 감정이 무력화되는 공간으로 기능합니다. 이러한 상징들은 단지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장치가 아닌,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하는 매개체입니다. 관객은 공포 장면이 끝난 후에도 이 상징들을 곱씹으며 더 깊은 불안을 느끼게 됩니다.

캐릭터 해석: 파괴된 가족의 초상

유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인물들이 단순한 공포의 수단이 아니라, 각자의 심리적, 사회적 내면이 정교하게 묘사된 존재라는 점입니다. 중심인물인 애니(토니 콜렛)는 이 영화의 핵심 축입니다. 그녀는 자신이 어릴 때 받은 상처를 제대로 치유하지 못한 채, 그 상처를 자녀들에게 무의식적으로 물려줍니다. 그녀는 처음엔 침착하고 현실적인 인물처럼 보이지만, 이야기의 중반을 지나며 점점 감정의 균열이 드러납니다. 애니는 자신의 어머니와의 관계, 딸 찰리의 죽음, 그리고 아들 피터와의 갈등을 통해 급속히 붕괴되어 갑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감정 표현을 넘어, 인간의 내면에서 불안과 죄책감이 어떤 방식으로 확장되는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줍니다.

찰리는 외견상 아이 같지만, 말투, 시선, 그림체 등 모든 면에서 기괴한 느낌을 줍니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일반적인 감정 교류가 힘든 존재로 설정되어 있으며, 이는 단순한 ‘특이한 아이’라기보다 파이몬이라는 존재와 연결된 상징적 캐릭터로 볼 수 있습니다. 찰리는 애니의 모친이 그녀에게 강제로 영적인 존재를 주입시킨 결과이며, 이는 '가문의 저주'가 의도적으로 구현된 모습입니다. 그녀의 죽음은 단순한 사고가 아닌, 의식의 일부였다는 점에서 영화의 모든 인물은 이미 운명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에 들어서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피터는 가족 내에서 가장 인간적인 고통을 표현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찰리의 죽음 이후 죄책감에 시달리며,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혼란에 빠집니다. 중요한 점은 피터가 영화의 결말에서 ‘파이몬’으로 전이되지만, 이는 그의 선택이 아닌, 철저히 외부에 의해 정해진 결과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자유 의지를 가진 주체로 그려지기보다는, 타인의 욕망과 과거의 유산, 정체 모를 힘에 의해 움직이는 비극적 존재로 그려지며, 이는 영화 전체에 거대한 운명론적 그림자를 드리웁니다.

내러티브 구조: 불가항력적 서사

유전의 스토리 전개 방식은 일반적인 공포영화와 명확히 구분됩니다. 대부분의 공포 영화는 일정한 공식을 따릅니다. 인물 소개 → 사건 발생 → 공포 확대 → 반전 또는 생존. 하지만 유전은 이 같은 공식을 의도적으로 해체하며, 이야기를 통해 관객이 스스로 의미를 구성하도록 유도합니다. 영화 초반은 마치 드라마처럼 전개됩니다. 가족의 죽음, 갈등, 일상적 회상 장면들이 주요 비중을 차지하며, 관객은 이 영화를 처음에는 '가족 심리 드라마'로 오인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찰리의 죽음 이후 영화는 급격히 톤을 바꾸며 진정한 공포를 드러냅니다. 이 전환점은 단순히 충격 요소가 아닌, 플롯 전체의 분기점입니다. 이후 서사는 급속도로 어두워지고, 등장인물들의 감정과 현실의 경계가 모호해집니다. 영화 후반부는 이성이 붕괴되고, 초자연적 요소가 현실을 지배하는 서사로 변모하며, 끝내 피터의 ‘변신’과 숭배 의식 장면에서 절정에 달합니다.

특이한 점은 이 모든 전개가 반전이나 트위스트 없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대신 영화는 초반부터 수많은 복선과 암시, 미장센을 배치하여 관객 스스로 '그럴 수도 있다'는 불안감을 조성하고, 결국 그 불안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통해 강력한 심리적 충격을 줍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자유의지’가 부재한 세계를 그리고 있습니다. 인물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국 예정된 결말로 향한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공포를 단순히 감각적 자극이 아닌, 존재론적 공포로 승화시킨 사례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유전(Hereditary)은 단순히 무섭고 충격적인 공포 영화가 아니라, 정밀한 구조와 계산된 서사 흐름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습니다. 즉, 인간 심리의 어두운 단면과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 숨겨진 복잡한 감정의 결합체입니다. 상징주의적 장치와 정교하게 설계된 인물, 운명에 가까운 내러티브 구조는 관객으로 하여금 반복 시청을 통해 더욱 깊은 해석을 이끌어냅니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귀신,악령보다 더 무서운 공포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가족이 서로에게 남기는 상처, 그리고 그 상처가 세대를 넘어 '유전'될 수 있다는 잔혹한 현실입니다. 이 작품은 ‘보는’ 영화가 아니라, ‘파고드는’ 영화이며, 진정한 공포가 무엇인지 되묻게 합니다. 아직 이 영화를 감상하지 않았다면, 이 글을 계기로 꼭 감상해 보시고, 이미 보셨다면 새로운 시각으로 다시 한번 천천히 곱씹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