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술 한잔할래?" "아니, 오늘 너무 피곤해. 다음에 보자." "주말에 여행 갈래?" "아니, 다음 달 카드값이 걱정돼서 좀 그렇네." "이거 한번 새로 배워볼래?" "아니, 나중에 여유 생기면 할게."
우리는 습관처럼 거절을 입에 달고 삽니다. 사실 거절은 참 편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게 해 주니까요. 이불 밖은 위험하고, 새로운 도전은 귀찮으며, 낯선 사람을 만나는 건 엄청난 감정 소모를 요구합니다. 그렇게 우리는 '안전한 방구석'을 지킨다는 그럴듯한 핑계로 서서히 고립되어 갑니다. 스마트폰 속 타인의 세상은 화려하게 돌아가는데, 정작 나의 시간은 회색빛으로 멈춰있는 듯한 그 찝찝한 기분.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느껴봤을 지독한 권태로움입니다.
곧 2025년 새해가 밝습니다. 매년 1월 1일이면 다이어리에 "올해는 반드시 달라질 거야"라고 비장하게 적지만, 왜 우리는 작심삼일로 끝나고 1월 4일부터는 다시 어제와 똑같은 지루한 오늘을 살게 될까요? 2008년 개봉한 짐 캐리 주연의 영화 <예스맨(Yes Man)>은 그 이유가 바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내뱉는 'No(거절)의 장벽' 때문이라고 꼬집습니다.
오늘 저는 이 유쾌한 코미디 영화를 단순한 킬링타임용이 아닌, 인생의 정체기(Slump)를 겪고 있는 우리를 위한 강력한 심리학적 처방전으로 다시 읽어보려 합니다. 인생이 노잼 시기라고 느껴지신다면, 이 글이 당신의 2025년 운명을 바꾸는 작은 스위치가 될 것입니다.
1. "No"는 인생의 브레이크다: 안전하지만, 영원히 멈춰버린 자동차
영화의 주인공 칼 알렌(짐 캐리)은 대출 회사 상담원입니다. 그의 일상은 모든 것에 "No"라고 말하는 것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가장 친한 친구 피터가 약혼 파티에 초대해도 "일이 바쁘다"는 거짓말을 하며 피하고, 직장 상사가 코스튬 파티에 오라고 해도 "관심 없다"라며 딱 잘라 거절합니다. 심지어 간절하게 대출을 부탁하는 사람들의 사연도 듣지 않고 기계적으로 "승인 거절" 도장을 찍어댑니다. 퇴근 후 비디오 가게에서 빌린 DVD를 보며 혼자 킬킬거리는 게 유일한 낙이라고 자위하지만, 사실 그는 이혼 후 찾아온 상실감과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는 중입니다.
영화 초반, 칼이 친구들의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고 핑계를 대는 장면은 묘하게 낯설지가 않습니다. 바로 지쳐버린 우리들의 자화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 실패하지 않기 위해 마음속에 두꺼운 방어기제를 세웁니다. "기대하지 않으면 실망할 일도 없어", "나가봤자 돈만 쓰지"라며 스스로를 합리화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칼이 꾸는 악몽을 통해 그 선택의 대가를 섬뜩하게 보여줍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집에서 홀로 고독사(死)하고, 죽어서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비참한 결말. 그것이 바로 '거절'이 가져다주는 미래였습니다.
"No"는 당신을 안전하게 지켜줄지는 몰라도,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자동차로 비유하자면, 엑셀은 밟지 않고 브레이크만 꽉 밟고 있는 상태와 같습니다. 브레이크를 밟고 있으면 사고는 나지 않겠죠. 하지만 그 자동차는 영원히 주차장을 벗어나지 못한 채 녹슬어갈 뿐입니다. 목적지 없는 삶, 풍경이 바뀌지 않는 삶. 그것이 바로 'No'가 지배하는 삶의 본질입니다.
2. 행동이 감정을 만든다: "Yes"가 불러온 나비효과
어느 날 칼은 옛 친구의 손에 이끌려 수상한 자기 계발 세미나에 참석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그는 사이비 교주 같은 강사에게 홀려 얼떨결에 **"앞으로 닥치는 모든 제안에 무조건 'Yes'라고 답하겠다. 만약 'No'를 하면 재앙이 닥칠 것이다"**라는 황당한 서약을 하게 됩니다. 선택권은 없습니다. 친구가 술값을 계산하라고 해도 Yes, 노숙자가 핸드폰을 빌려달라고 해서 배터리를 다 써버려도 Yes.
처음엔 억지로, 서약의 저주가 무서워서 시작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꽉 막혀있던 그의 인생에 '우연'이라는 거대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한 겁니다. 노숙자를 외진 공원까지 태워다 준 덕분에 주유소에서 기름이 떨어지고, 그 덕분에 스쿠터를 탄 앨리슨(주이 디샤넬)을 만나게 됩니다. 홧김에 배운 한국어 수업 덕분에 한국인 점원과 친해지고, 무심코 배운 기타 실력으로 자살하려는 사람을 구하기도 합니다.
심리학에는 **'행동 활성화(Behavioral Activation)'**라는 치료법이 있습니다. 우울해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안 하니까 우울해진다는 원리입니다.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이고 사람을 만나면(Yes), 그 행동이 새로운 감정을 만들어냅니다. 칼의 인생이 180도 바뀐 건 그가 갑자기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서가 아닙니다. 일단 문을 열고 나갔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종 "완벽하게 준비가 되면 시작할게"라고 말하지만, 영화는 말합니다. 인생의 기적은 준비된 자에게 오는 게 아니라, **일단 저지르는 자(Yes Man)**에게 쏟아지는 선물이라고요.
3. 진심 없는 긍정은 독이다? 주체적인 삶으로의 도약
물론 영화는 무조건적인 '예스'의 위험성도 경계합니다. 영화 후반부, 칼의 연인이 된 앨리슨은 칼의 모든 긍정적인 행동과 친절이 그의 진심이 아니라, 단지 '서약(종교적 의무)'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녀는 큰 배신감을 느끼며 칼을 떠납니다. "당신은 나랑 여행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라, 가야만 해서 간 거잖아요. 그건 거짓말이에요."
이 장면은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의 긍정은 진짜인가, 가짜인가?" 직장 상사의 부당한 지시에 무조건 "네, 알겠습니다"라고 하는 것, 하기 싫은 모임에 억지로 나가서 웃음 짓는 것. 이것은 진정한 긍정(Yes)이 아니라 **'굴종'이자 '회피'**일 뿐입니다. 남의 눈치를 보느라, 혹은 거절하면 나쁜 사람이 될까 봐 내뱉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식의 Yes는 결국 내 영혼을 갉아먹습니다.
칼은 앨리슨과의 이별을 통해 깨닫습니다. 지금까지의 Yes가 운명에 떠밀려 어쩔 수 없이 한 **'수동적 긍정'**이었다면, 이제부터 필요한 건 내 의지로 선택하는 **'주체적 긍정'**이라는 것을요. 하기 싫은 일에는 당당하게 "No"라고 말할 줄 알아야, 내가 하는 "Yes"가 진짜 가치를 갖게 됩니다. 2025년 우리가 외쳐야 할 Yes는 맹목적인 복종이 아닙니다. 두렵고 귀찮지만, 그 너머에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믿고 '내가 원해서' 선택하는 용기 있는 Yes여야 합니다. 실패할 수도 있고, 상처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 해보겠다"는 주체적인 태도, 그것이 바로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진정한 'Yes Man'의 정신입니다.
결론: 2025년, 당신의 대답은 무엇입니까?
영화의 마지막, 칼은 더 이상 서약이 무서워서 Yes를 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지로 삶을 긍정하고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벙커 같았던 그의 집은 친구들로 북적이고, 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생기가 넘칩니다.
이제 곧 2025년이라는 새로운 초대장이 우리에게 도착합니다. 이 초대장을 받아 들고 "아니, 난 그냥 작년처럼 이불속에 있을래"라며 문을 닫으실 건가요? 아니면 "좋아, 뭐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한번 가보지 뭐!"라며 문을 활짝 여실 건가요?
올해는 조금 무모해져도 좋습니다. 생각할 시간에 저지르고, 걱정할 시간에 출발하세요. 다이어트에 실패해도 괜찮고, 영어 공부를 작심삼일로 끝내도 괜찮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0보다는, 무엇이라도 시도해 본 1이 위대하니까요. 당신이 세상에 "Yes"라고 외치는 순간, 세상도 당신에게 "Yes"라고 화답하며 잊지 못할 기적을 선물해 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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