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 옛날이 좋았지. 낭만이 있었잖아." 우리는 술잔을 기울이며, 혹은 팍팍한 현실에 치여 한숨을 쉬며 습관처럼 말합니다.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없었지만 사람 냄새가 났던 90년대를 그리워하고, 입시 걱정 없이 뛰어놀던 어린 시절을 동경합니다. 왜 그럴까요? 지금 내가 발 딛고 있는 2024년의 현실은 너무 시끄럽고, 복잡하고,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안전하고 아름다웠던(것으로 기억되는)' 과거로 도피하려 합니다.
우디 앨런 감독의 2011년 작 <미드나잇 인 파리>는 이런 현대인의 고질병인 **'현재 불만족 증후군'**을 정확하게 꼬집는 영화입니다. 주인공 길 펜더(오웬 윌슨)는 헐리우드에서 잘나가는 시나리오 작가지만, 상업적인 글쓰기에 환멸을 느끼고 진짜 문학을 하고 싶어 하는 인물입니다. 그는 약혼녀와 함께 파리로 여행을 오지만, 사사건건 현실적인 문제로 부딪힙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술에 취해 파리의 뒷골목을 헤매던 그는 자정이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나타난 구형 푸조 자동차에 홀린 듯 올라탑니다. 그리고 그 차는 그를 1920년, 예술의 황금시대로 데려갑니다.
오늘 저는 이 몽환적이고 아름다운 영화를 단순히 '시간 여행 판타지'로 보지 않고, 우리가 왜 자꾸 과거로 도망치려 하는지, 그리고 이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오늘'을 사랑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한 철학적 에세이로 다시 읽어보려 합니다.
1. 황금시대(Golden Age)라는 이름의 달콤한 마취제
주인공 '길'에게 1920년대의 파리는 완벽한 유토피아입니다. 그곳에는 그가 숭배해 마지않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술을 마시고, 파블로 피카소가 그림을 그리며, 스콧 피츠제럴드 부부가 화려한 파티를 엽니다. 살바도르 달리가 코뿔소 이야기를 하며 와인을 권하는 그곳에서, 길은 비로소 숨을 쉬는 것 같다고 느낍니다. 현실의 약혼녀 이네즈는 그의 문학적 감수성을 비웃지만, 1920년대의 사람들은 그를 예술가로 대우해 줍니다. 길은 매일 밤 자정(Midnight)이 되면 현실을 버리고 과거로 도망칩니다.
하지만 영화는 중반부에서 아주 흥미롭고 충격적인 반전을 보여줍니다. 길은 1920년대에서 만난 운명의 여인 '아드리아나'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런데 1920년대를 사는 아드리아나는 정작 자신의 시대를 지루해하며, 그녀가 동경하는 1890년대 '벨 에포크(Belle Époque)' 시대로 가고 싶어 합니다. 둘은 우연히 1890년대로 넘어가게 되는데, 놀랍게도 그곳에서 만난 고갱과 드가는 르네상스 시대를 동경하며 "지금은 낭만이 없고 상상력이 빈곤한 시대"라고 한탄합니다.
여기서 길은 거대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영화는 이것을 **'황금시대적 사고(Golden Age Thinking)'**라고 정의합니다. "여기에 머물면 여기가 현재가 돼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 속의 황금시대란, 사실 현재의 고통을 잊기 위한 진통제일 뿐이에요." 우리가 과거를 아름답게 기억하는 건, 그 시절이 정말로 완벽해서가 아닙니다. 단지 '이미 지나간 일'이라서 결과가 정해져 있고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불확실성이 두려워 우리는 자꾸만 이미 정답이 나온 과거의 답안지를 훔쳐보고 싶어 하는 것이죠. 과거에 대한 집착은 결국 현실 도피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2. 헤밍웨이의 조언: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소심한 길 펜더가 당대 최고의 마초 작가인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만나는 장면입니다. 자신의 소설을 보여주기 주저하며 "제 글이 별로일까 봐 겁나요"라고 말하는 길에게, 헤밍웨이는 특유의 강렬하고 직설적인 화법으로 쏘아붙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죽음마저 잊게 만든다네. 겁쟁이들이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사랑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래."
이 대사는 단순히 연애를 잘하라는 연애 코칭이 아닙니다. 지금 이 순간(Present)에 온전히 몰입하여 치열하게 살라는 실존주의적 조언입니다. 죽음(미래의 끝)이나 실패를 두려워하는 이유는, 지금 현재 내가 내 삶을 온전히 연소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길은 늘 "이 소설은 아직 준비가 안 됐어", "나는 재능이 부족해", "환경이 안 좋아"라며 핑계를 댔지만, 1920년대의 예술가들은 핑계 댈 시간에 쓰고, 그리고, 토론하고, 사랑했습니다. 그들의 시대가 후대에 '황금시대'라고 불리게 된 것은, 그들이 과거를 그리워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시대를 그 누구보다 뜨겁게 현재진행형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워해야 할 것은 과거의 풍경이 아니라, 그들이 가졌던 '현재에 대한 몰입'이어야 합니다.
3. 비 오는 파리를 걷는다는 것: 현실을 껴안는 용기
영화의 엔딩, 길은 화려했던 과거의 환상, 그리고 사랑했던 아드리아나와의 작별을 고하고 다시 2010년의 파리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과 결이 맞지 않는 약혼녀 이네즈와 헤어지고, 안정된 헐리우드 생활을 버린 채 홀로 파리에 남기를 선택합니다.
그가 세느강 다리 위를 걸을 때 파리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과거의 길이라면, 혹은 현실적인 약혼녀라면 "비 오는데 택시가 안 잡혀"라며 짜증을 내고 우산을 찾았을 겁니다. 하지만 각성을 끝낸 길은 다릅니다. 우연히 만난 레코드 가게 직원 가브리엘에게 그는 웃으며 말합니다. "사실 파리는 비 올 때가 제일 예뻐요(Paris is the most beautiful in the rain)."
이 장면이야말로 영화가 관객에게 주고 싶었던 진짜 메시지입니다. '비(Rain)'는 현실의 불편함, 축축함, 예기치 못한 시련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길은 이제 그 불편함마저 낭만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습니다. 현실은 여전히 시끄럽고, 비가 내리고, 미래는 불투명합니다. 하지만 그 '불편한 현실'조차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가질 때, 비로소 나의 보잘것없는 오늘은 나만의 황금시대가 됩니다. 과거의 환상(마차)에서 내려, 현재의 비를 맞으며 뚜벅뚜벅 걸어갈 용기. 그것이 바로 어른의 성장 아닐까요.
결론: 당신의 전성기는 바로 오늘입니다
우리는 늘 "내가 왕년에 말이야"라며 과거를 미화하거나, "나중에 돈 많이 벌면 행복해질 거야"라며 미래로 행복을 유예합니다. 하지만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숨 쉬고 만질 수 있는 시간은 오직 '지금' 뿐입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박물관에 전시된 박제된 과거를 살 것인가, 아니면 비를 맞더라도 살아 숨 쉬는 오늘을 살 것인가. 영화 속 대사처럼 "과거는 박물관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고, 당신은 현재에 있을 때 가장 빛납니다."
혹시 지금 당신의 현실이 초라해 보여서 자꾸만 스마트폰 속 다른 사람의 삶이나 과거의 기억을 들여다보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지금 당장 창문을 열고 들어오는 차가운 밤공기를 한번 깊게 들이마셔 보세요. 헤밍웨이도, 피카소도, 살바도르 달리도 갖지 못한 '오늘'이라는 시간이 지금 당신의 손에 쥐어져 있으니까요. 당신이 치열하게 고민하고 아파하는 바로 오늘 밤이, 훗날 당신이 그토록 그리워할 당신만의 '미드나잇'일지도 모릅니다.
[함께 읽으면 좋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