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은 거야. 네가 무엇을 고를지 아무도 모르거든."
이 유명한 대사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겁니다. 1994년에 개봉한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IQ 75의 지능을 가진 한 남자의 기적 같은 인생을 다룹니다. 우리는 보통 똑똑하고 계획적인 사람이 성공한다고 믿습니다. 치밀하게 미래를 설계하고, 손익을 따지며, 가장 효율적인 길을 찾아내는 것이 '지혜'라고 배우며 자랐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우리의 그런 믿음을 보기 좋게 배신합니다. 계산할 줄 모르는 바보, 남들이 비웃던 포레스트(톰 행크스)가 오히려 가장 풍요롭고 역사적인 삶을 살게 되니까요. 오늘 저는 이 영화를 단순한 감동 드라마가 아니라, '너무 많이 생각하느라 한 발자국도 떼지 못하는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실존적 철학으로 다시 읽어보려 합니다.
깃털의 의미: 운명에 순응하는가, 개척하는가?
영화의 오프닝과 엔딩에는 하얀 깃털 하나가 바람에 날리는 장면이 수미상관으로 등장합니다. 이 깃털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인 '운명'을 상징합니다. 포레스트는 다리에 교정기를 차야만 걸을 수 있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우연한 기회에 자신이 누구보다 빨리 달릴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그 달리기 능력 하나로 미식축구 선수가 되고, 베트남 전쟁 영웅이 되고, 탁구 국가대표가 되어 핑퐁 외교의 주역이 됩니다.
그의 인생은 계획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바람에 날리는 깃털처럼 우연히 그곳에 갔고, 주어진 상황에서 도망치지 않고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반면, 그의 전우였던 댄 중위는 다릅니다. 그는 엘리트 군인 가문 출신으로, "전장에서 명예롭게 죽는 것"이 자신의 정해진 운명이라 굳게 믿었습니다. 하지만 포레스트에 의해 구조되어 두 다리를 잃고 살아남게 되자, 그는 신을 저주하며 방황합니다. 자신의 계획(운명)대로 되지 않은 인생을 '실패'라고 규정한 것이죠.
영화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각자 정해진 운명이 있는 걸까요, 아니면 바람에 떠다니는 깃털처럼 우연의 연속을 사는 걸까요? 영화의 끝자락, 제니의 묘비 앞에서 포레스트는 이렇게 독백합니다. "아마도 둘 다가 아닐까? 우리는 운명을 타고나지만, 동시에 깃털처럼 떠다니기도 하는 거야."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고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댄 중위가 결국 새로운 다리(의족)를 얻고 평화를 찾았듯, 때로는 바람이 이끄는 곳에 우리가 미처 몰랐던 더 멋진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제니와 포레스트: 도망치는 자와 달리는 자
포레스트의 영원한 사랑이자 아픈 손가락인 제니는 포레스트와 정반대의 삶을 삽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학대당한 끔찍한 트라우마를 안고 있습니다. 그녀는 끊임없이 고향을 떠나 '무언가'를 찾아 헤맵니다. 히피 문화에 심취하고, 반전 운동을 하고, 마약에 손을 대며 자신을 파괴합니다. 그녀는 늘 "새가 되어 멀리 날아가고 싶다"라고 말했지만, 역설적으로 그녀가 도망치려 했던 그 바닥으로 계속 추락합니다. 제니에게 움직임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였습니다.
반면 포레스트에게 달리기는 '단순한 전진'이었습니다. 그는 복잡한 이유를 대지 않습니다. 제니가 떠나고 홀로 남겨졌을 때, 그는 그저 운동화 끈을 묶습니다. "그저 달리고 싶어서 달렸어요(I just felt like running)." 그는 동부 끝에서 서부 끝까지, 3년 2개월 동안 미국 전역을 달립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묻습니다. "세계 평화를 위해서입니까? 여성 인권을 위해서입니까? 환경 보호를 위해서입니까?" 포레스트는 대답합니다. "아니요, 그냥요."
우리는 어떤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려 합니다. '이게 나에게 무슨 이득이 될까?',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제니처럼 너무 많은 생각과 상처는 오히려 우리를 병들게 합니다. 때로는 포레스트처럼 복잡한 생각의 스위치를 끄고, 그냥 문 밖으로 나가는 단순함이 인생을 구원하기도 합니다. 계산 없이 시작한 그의 달리기가 수많은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었듯이 말이죠.
"나는 똑똑하지 않지만, 사랑이 뭔지는 알아"
사람들은 포레스트를 바보라고 놀립니다. 하지만 그는 화내지 않고 어머니의 말씀을 인용해 이렇게 대꾸합니다. "바보는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게 바보야(Stupid is as stupid does)." 이 말은 행동하지 않고 말만 앞세우거나, 남을 상처 입히는 똑똑한 사람들을 향한 일침처럼 들립니다.
그는 복잡한 정치나 경제는 모릅니다. 애플 주식을 '과일 회사'라고 생각할 정도니까요. 하지만 그는 약속을 지키는 법, 친구를 배신하지 않는 법, 그리고 한 여자를 끝까지 사랑하는 법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친구 버바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새우잡이 배를 사고, 전사한 친구의 가족을 챙깁니다. 그리고 자신을 숱하게 떠났던 제니가 돌아왔을 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녀를 받아줍니다.
제니가 자신의 병을 고백하며 청혼을 망설이자, 포레스트는 말합니다. "나는 똑똑하지 않지만, 사랑이 뭔지는 알아(I'm not a smart man, but I know what love is)." 이 투박한 고백이 그 어떤 시인의 화려한 미사여구보다 가슴을 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이 계산되지 않은 100%의 진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무 똑똑해서 탈입니다. 상처받지 않으려고 사랑을 재고, 손해보지 않으려고 관계를 계산합니다. 하지만 진짜 사랑은 포레스트처럼 온몸으로 부딪히는 것임을, 영화는 보여줍니다.
영화의 마지막, 포레스트는 아들을 스쿨버스에 태워 보내며 다시 그 자리에 앉습니다. 그리고 그의 발치에 있던 하얀 깃털은 다시 바람을 타고 하늘로 날아오릅니다. 그는 백만장자가 되었지만 여전히 낡은 운동화를 신고 잔디를 깎으며 평온하게 살아갑니다.
<포레스트 검프>는 우리에게 "성공하려면 바보가 되어라"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남들의 속도에 맞춰 헐떡거리며 살지 말고, 너만의 속도로 묵묵히 달리라고 말해줍니다. 조금 느려도 괜찮습니다. 남들보다 조금 부족해도 괜찮습니다. 중요한 건 멈추지 않고 계속 가는 것이니까요. "Run, Forrest, Run!"이라는 제니의 외침처럼 말이죠.
지금 인생이 계획대로 풀리지 않아 답답하신가요? 그렇다면 너무 머리 쓰지 말고, 오늘 하루 그냥 한번 달려보는 건 어떨까요? 포레스트가 그랬던 것처럼, 그 길 끝에서 어떤 달콤한 초콜릿을 맛보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포레스트 검프가 '행동하는 삶'을 보여줬다면, 여기 '주체적인 삶'을 외친 또 다른 스승이 있습니다. 아직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