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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실존주의 (무의미, 상실, 기억)

by cdh9100 2025. 11. 23.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일러스트 이미지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화려한 색채와 정교한 구도로 유명하지만, 그 겉모습을 벗기고 보면 실존주의 철학이 깊숙이 녹아 있는 작품입니다. 주인공 구스타브와 제로, 그리고 이들이 관계 맺는 방식은 단순한 인간관계를 넘어, 존재의 본질과 의미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 본 글에서는 영화 속 인물관계와 사건 전개를 통해 실존주의 철학의 핵심 개념인 ‘무의미’, ‘상실’, ‘기억’의 세 가지 측면을 중심으로 영화를 분석하고자 합니다. 감정의 흔들림과 시대의 몰락 속에서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를 찾는 여정은,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무의미: 인간 존재의 유한함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이중 삼중의 회상 구조를 통해 관객을 과거로 끌어들입니다. 이 구조는 단순한 플래시백 기법이 아니라, 인간 존재가 시간 속에서 어떻게 해석되고 잊히는지를 시각적으로 상징합니다. 영화의 주된 배경은 전쟁 이전의 유럽, 즉 세속적 질서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하는 시기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주인공 구스타브는 그 속에서 나름의 질서와 도덕을 유지하려 합니다. 그는 고객에게 친절하며, 엄격한 예절을 고수하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삶을 통제하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실존주의 철학의 관점에서 보면, 무의미한 세계에 임의로 부여된 의미일 뿐입니다.

실존주의에서 인간은 본질이 없이 태어나며, 의미는 스스로 만들어가는 존재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구스타브는 과거의 낡은 가치와 형식을 철저히 믿으며, 마치 이미 주어진 본질을 따르는 듯한 삶을 살아갑니다. 이 아이러니가 영화의 핵심입니다. 그의 행동은 겉보기에 의미 있어 보이지만, 전쟁과 혼란이라는 거대한 시대의 흐름 앞에서는 무력하고 덧없는 것이 됩니다. 구스타브가 결국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는 장면은, 인간 존재가 아무리 노력해도 피할 수 없는 무상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그가 시를 낭송하거나, 향수를 뿌리며 자신을 단장하는 행위는 단순한 유미주의가 아니라, 혼돈 속에서 자아를 지키려는 필사적인 행위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조차 외부 세계의 폭력 앞에서는 아무 힘이 없습니다. 이는 실존주의의 핵심 개념 중 하나인 ‘부조리’를 상기시킵니다. 인간은 의미를 찾고자 하지만, 세계는 그러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습니다. 구스타브의 삶은 아름답고 정돈돼 보이지만, 그의 마지막은 우리 모두가 직면하게 될 실존적 현실, 즉 ‘무의미’ 그 자체입니다. 이러한 구조는 관객에게도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이 부조리한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가?”

상실: 관계와 시대의 붕괴

상실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전반을 관통하는 핵심 정서입니다.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중요한 무언가를 잃은 존재들입니다. 제로는 전쟁으로 가족과 조국을 잃었고, 구스타브는 호텔이라는 자아의 상징을, 결국에는 자신의 삶마저 잃게 됩니다. 그러나 이들의 상실은 단순히 물리적 대상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존주의에서 상실은 ‘존재에 대한 지탱 구조의 붕괴’를 의미하며, 정체성의 기반을 흔들리게 합니다.

제로와 구스타브의 관계는 단순한 사제지간이 아니라, 서로의 상실을 보완하고자 하는 실존적 동맹입니다. 제로는 구스타브를 통해 상실된 아버지상을 재건하고, 구스타브는 제로를 통해 자신이 고수하고자 하는 질서를 유지할 수 있는 후계자를 찾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연대는 외부 세계의 폭력에 의해 반복적으로 위협받습니다. 결국 구스타브가 사망하고, 제로는 호텔을 유지하지만, 그 본래의 의미는 소멸됩니다. 이는 사르트르가 말한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신을 규정하는 시도’의 실패를 반영합니다.

호텔이라는 공간은 단지 숙박 시설이 아니라, 구스타브와 제로의 관계, 유럽의 한 시대, 그리고 개인적 기억이 교차하는 실존적 공간입니다. 그 공간이 쇠락하고, 잊히며, 상업적 소비의 대상이 되면서 상실은 더욱 극대화됩니다. 우리는 더 이상 그 공간에 의미를 부여할 수 없습니다. 이 점에서 영화는 ‘모든 관계는 결국 상실로 귀결된다’는 실존주의의 냉정한 통찰을 드러냅니다.

또한 상실은 새로운 존재의 계기를 제공하기도 합니다. 제로는 구스타브를 잃고 난 뒤에도 그의 가치를 기억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갑니다. 이는 니체가 말한 ‘영원회귀’와도 연결됩니다. 상실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의미화의 시작이 될 수 있으며, 인간은 끊임없이 붕괴와 재건을 반복하며 존재의 의미를 확장해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영화는 조용히 전달합니다.

기억: 실존의 흔적과 지속성

기억은 실존주의 철학에서 단순한 회상이 아닌, 존재를 증명하는 주요한 수단입니다. 인간은 현재라는 순간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 의미는 과거의 기억을 통해 재구성되고, 미래의 방향성을 통해 지속됩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전반적으로 ‘기억’의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한 소녀가 책을 읽는 장면으로 시작되고, 중년의 작가가 젊은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펼치는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액자 구조는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시간성 개념과도 밀접하게 맞닿아 있습니다.

기억은 제로라는 인물의 시선을 통해 재구성됩니다. 그는 젊은 시절의 자신과 구스타브의 관계, 그리고 호텔이 지녔던 의미를 회상합니다. 그러나 그 기억은 완전하지 않습니다. 일부는 미화되어 있고, 일부는 누락되어 있으며, 관객은 진실과 해석 사이의 경계를 오가게 됩니다. 실존주의에서 말하는 기억은 ‘지나간 존재의 흔적’이며, 이를 통해 인간은 현재의 정체성을 확립합니다.

영화 속 제로는 구스타브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그 기억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간직합니다. 그는 여전히 호텔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 호텔은 더 이상 과거의 화려함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기억은 존재하지만, 그 실체는 사라진 상태입니다. 이는 하이데거의 ‘현존재(Dasein)’가 지닌 시간성과 불완전성을 상기시킵니다. 인간 존재는 항상 과거, 현재, 미래를 오가며 자기 자신을 구성하지만, 그 기억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영화는 “우리는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던집니다. 구스타브는 실제보다 훨씬 더 위대한 인물로 제로의 기억 속에 존재합니다. 그는 어떤 면에서는 실재보다도 더 큰 상징으로 남습니다. 실존주의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 자신을 정의하려는 시도는 위험하다고 경고하지만, 인간은 결국 타인의 기억 속에 의해 존재하게 된다는 점도 인정합니다. 이 영화는 그런 역설을 섬세하게 보여주며, 인간 존재가 얼마나 유약하고 덧없는지를 서정적으로 묘사합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화려한 색감과 기괴한 유머로 기억되지만, 그 본질은 "사라져 가는 세계를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전쟁과 폭력은 직접적인 주인공이 아니지만, 이야기가 흐르는 내내 배경처럼 스며들어 문명을 조금씩 잠식해 들어갑니다. 그 중심에서 구스타브 H는 세상을 구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는 오직 끝까지 예의를 지키는 방식으로 저항합니다. 그의 정중함은 사치가 아니라, 폭력의 시대 앞에서 무너지지 않으려는 마지막 윤리입니다. 그리고 구스타브와 제로의 관계를 통해 실존주의 철학의 핵심 개념인 ‘무의미’, ‘상실’, ‘기억’을 심도 있게 탐구하며, 인간 존재의 복잡성과 불완전함을 드러냅니다.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그 화려한 외관 속에 숨겨진 깊은 철학적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여러분이 맺고 있는 관계, 떠올리고 있는 기억, 그리고 스스로에게 부여한 의미가 어떤 것인지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