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엘튼 존 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나요? 아마도 기상천외한 안경과 화려한 의상일 겁니다. 저 역시 그를 그저 '유난스러운 팝스타'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 <로켓맨>을 보고 난 뒤, 그 화려한 장식들이 사실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갑옷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영화는 성공한 가수의 자서전이 아닙니다. 평생을 외로움에 떨며 '단 한 번만이라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 달라'라고 외치는 한 남자의 처절한 생존기입니다. 오늘 저는 슈퍼스타 엘튼 존이 아닌, 상처투성이 인간 '레지널드'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내면의 결핍과 치유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성장: 천재 소년의 탄생과 음악과의 첫 만남
그가 '엘튼 존'이라는 이름을 스스로 지었을 때, 그것은 단순한 예명이 아니라 과거의 비참한 자신을 죽이고 다시 태어나려는 필사적인 몸부림이었습니다. 엘튼 존은 1947년, 영국에서 레지널드 케네스 드와이트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보통의 아이들과는 다른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고, 음악은 그의 가장 강력한 도피처였습니다. 그는 피아노에 대한 천부적인 재능을 보였고, 이를 눈여겨본 어머니와 외할머니는 그를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로열 아카데미 오브 뮤직(Royal Academy of Music)에 입학할 정도로 그 재능은 명확했습니다.
하지만 가정환경은 엘튼에게 따뜻한 기억으로 남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감정 표현이 서툴렀고, 부모의 갈등은 점점 깊어졌습니다. 이러한 불우한 가정은 엘튼의 정체성 형성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고, 그는 점점 더 음악에 몰두하게 됩니다. 영화는 이 시기를 매우 감정적으로 그려내며, 그의 내면에 자리 잡은 외로움과 사랑에 대한 갈망을 드러냅니다.
특히 ‘엘튼 존’이라는 예명을 선택하는 장면은 상징적입니다. 단순히 무대 이름이 아닌, 자신이 되고 싶은 사람으로의 ‘자기 창조’였습니다. 레지널드라는 이름에서 벗어나 엘튼 존으로 거듭나는 과정은 그가 과거의 상처를 벗고 새로운 존재로 거듭나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이 장면은 자아 정체성을 탐색하는 모든 이에게 강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영화는 엘튼의 성장 과정을 단순한 성공담으로 그리지 않습니다. 좌절, 외로움, 고립,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몸부림까지 생생하게 그려냅니다. 특히 음악이 그의 삶에 어떤 의미였는지를 반복적으로 강조하며, 음악이 단지 경력이나 직업이 아닌 삶의 전부였다는 것을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합니다.
고통: 성공 이면의 외로움과 중독
수만 명의 관중이 이름을 연호해도, 무대 뒤 대기실에 혼자 남겨졌을 때 찾아오는 그 지독한 공허함을 우리는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무대 위에서 수많은 사람의 환호를 받는 엘튼 존은 겉보기엔 모든 것을 가진 슈퍼스타였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그 화려함 뒤에 숨겨진 외로움과 고통, 그리고 자기혐오를 사실적으로 드러냅니다. 로켓맨의 핵심은 엘튼 존이 어떻게 내면의 상처를 안고 살아왔으며, 그 상처를 치유해 가는 여정을 고백하듯 풀어낸다는 데 있습니다.
그의 고통의 중심에는 ‘사랑받지 못한다는 감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가족으로부터의 소외, 연인과의 파괴적인 관계, 동성애자로서의 사회적 소외 등 다양한 요소가 겹쳐지며 그는 점점 외롭고 취약한 상태로 빠져듭니다. 이러한 감정은 결국 약물 중독과 알코올 의존으로 이어지며, 엘튼의 삶을 점점 갉아먹기 시작합니다. 특히 영화는 그의 심리적 고통을 환상과 뮤지컬이라는 기법을 통해 극적으로 표현합니다. 현실적인 묘사보다는 그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장면들이 인상적입니다. 예를 들어, 수영장에 빠져 무의식 상태로 내려가는 장면은 자살 충동과 현실 도피 욕구를 상징하며, 이는 그의 가장 어두운 내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장면으로 평가됩니다.
또한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장면은 리햅 센터(재활 시설)에서 진행되는 ‘자기 고백’입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외면하지 않고, 어린 시절의 상처까지 되돌아가며 자신을 직면합니다. 이는 단순한 반성이나 후회의 과정이 아니라, 자신을 치유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며, 결국 엘튼 존이 다시 일어설 수 있게 만든 중요한 전환점이 됩니다. 로켓맨은 이처럼 스타의 외면 뒤에 숨겨진 인간 엘튼 존의 연약함을 솔직하게 보여줍니다. 화려한 조명과 무대 뒤에는 사랑받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소년이 있었고, 영화는 그 소년이 어떻게 다시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화하는지를 따뜻하면서도 강렬하게 보여줍니다.
음악: 삶과 감정을 담은 창조의 도구
말로는 전할 수 없었던 그의 외로움과 사랑에 대한 갈망은, 오직 건반 위에서만 솔직한 언어가 되어 흘러나왔습니다. 엘튼 존의 음악은 단순한 창작의 산물이 아닙니다. 그의 음악은 감정의 언어이며, 삶의 연대기이자 자기 고백입니다. 로켓맨은 이러한 점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전통적인 전기 영화 방식에서 벗어나 뮤지컬 형식을 채택하여, 그의 노래를 단순한 삽입곡이 아닌 서사의 핵심 도구로 사용합니다.
예를 들어 ‘Your Song’은 그가 처음 버니 토핀과 함께 만든 곡으로, 영화 속에서 이 장면은 순수한 창작의 기쁨과 두 사람의 유대를 상징합니다. 이 노래는 단순히 유명한 곡이 아니라, 두 사람이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하기 시작하는 출발점으로 그려집니다. 이런 식으로 음악은 단지 분위기를 살리는 요소가 아니라, 인물 간의 관계와 감정을 드러내는 매개체로 작용합니다. ‘Rocketman’이라는 곡 역시 영화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 곡은 엘튼 존 자신을 대변하는 곡으로, 자신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외로움을 느끼는 감정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이 곡을 통해 엘튼이 내면의 혼란을 표현하고 있으며, 이 장면의 연출은 매우 상징적이고 서정적입니다.
또한 영화는 엘튼 존과 작사가 버니 토핀과의 관계를 매우 중요한 서사 축으로 삼고 있습니다. 둘의 관계는 형제애와도 같은 우정을 보여주며, 동시에 창작 파트너로서의 긴장과 갈등도 그려냅니다. 음악은 이 두 사람의 연결고리이며, 서로를 완성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영화는 이들의 관계를 단순한 동업자가 아닌, 엘튼 인생의 ‘정서적 지주’로 표현하며 감동을 더합니다. 무대 위에서 엘튼이 펼치는 공연 장면들은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그의 감정의 절정을 표현한 장면들입니다. 음악을 통해 그는 자기혐오, 외로움, 슬픔, 사랑, 그리고 희망을 노래하고, 관객은 그의 음악 속에서 그 모든 감정을 함께 체험하게 됩니다.
영화 로켓맨은 단지 엘튼 존이라는 스타의 삶을 나열하는 전기 영화가 아닙니다. 한 인간이 자신을 찾고,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며, 결국 자신의 존재를 사랑하게 되는 과정을 담은 깊은 감정의 여정입니다. 이 영화는 엘튼 존이라는 뮤지션을 넘어서, 우리가 모두 겪는 내면의 갈등과 치유의 필요성을 일깨워줍니다.
엘튼은 단순한 팝스타가 아니라, "나로서는 충분하지 않다, 더 화려한 나로 변신해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서 자신을 확장해 나갑니다. 이는 단순히 '유명해지고 싶은 욕망'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고 싶다'라는 인간의 본원적 욕망입니다.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음악의 절정이 아니라, 엘튼이 "I want to love myself"라고 노래하는 장면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 순간은 과거의 상처, 실패, 죄책감, 약물중독, 자기혐오를 모두 안고 살아가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자기 자신을 구원하는 순간입니다.
엘튼 존을 잘 모르는 이들이라도 이 영화를 통해 한 인간의 진솔한 여정을 느낄 수 있으며,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은 봐야 할 작품입니다. 감동, 예술성, 진정성을 모두 갖춘 이 영화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회자될 가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