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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커와 실존주의 철학 (니체, 키에르케고르, 사르트르)

by cdh9100 2025. 11. 22.

영화 조커 일러스트 이미지

 

2019년 개봉한 영화 조커(Joker)는 단순한 DC 코믹스 기반의 슈퍼빌런 탄생기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현대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가치, 고립된 존재의 고통, 자아를 찾아가는 실존적 여정을 깊이 있게 다룬 작품입니다. 조커의 주인공 아서 플렉은 단순한 범죄자가 아니라, 실존 철학의 핵심 질문들 ―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 에 고통스럽게 직면한 인물입니다. 본 리뷰에서는 니체, 키에르케고르, 사르트르라는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시각을 통해 조커를 분석하고, 영화가 던지는 철학적 메시지를 탐구합니다.

니체의 초인 사상과 조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의 철학에서 핵심 개념 중 하나는 ‘초인(Übermensch)’입니다. 니체는 기존의 도덕, 종교, 권위가 무너진 "신이 죽은 시대"에 인간이 스스로 가치와 의미를 창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초인은 혼란과 허무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규범을 세우는 존재입니다. 아서 플렉은 영화 초반, 사회로부터 철저히 배제된 인물입니다. 코미디언의 꿈을 안고 있지만 현실은 가혹하고, 정신 질환으로 약을 복용하며 간신히 삶을 이어갑니다. 그는 조롱받고, 폭행당하며, 구조적 불평등 속에서 "무명"으로 살아갑니다. 이러한 상황은 니체가 말한 ‘노예 도덕’의 산물인 현실 세계를 상징하며, 아서는 점점 이 세계에 대한 회의와 반발을 느낍니다. 그가 처음 살인을 저지르는 순간은 초인 탄생의 전환점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범죄행위가 아니라, 사회가 부여한 규범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현실을 해석하고 반응하는 실존적 선언입니다. 그는 조커라는 정체성을 만들어가며 점차 기존 사회의 질서와 완전히 결별하고, 자신의 새로운 가치와 정의를 재구성합니다. 물론, 아서의 선택이 폭력과 파괴를 동반하기 때문에 그가 니체가 말한 이상적 초인과 일치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는 명확히 “주어진 질서와 의미를 무효화하고, 스스로 의미를 창조하려는 실존적 인간”의 궤적을 따르고 있으며, 이는 니체 철학의 실천적 예시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키에르케고르의 절망과 선택의 철학

덴마크 철학자 키에르케고르(Søren Kierkegaard)는 실존주의 철학의 선구자로, 인간의 본질을 '절망하는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인간은 자기 자신이 되기를 원하면서도 자신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중적인 존재”라고 정의했으며, 진정한 자아실현은 끊임없는 자기 선택과 책임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서 플렉의 내면은 이러한 ‘절망의 단계’를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그는 평범하고 소박한 꿈을 품고 있지만, 현실은 그를 철저히 배제합니다. 어머니에게서조차 진실을 외면당하고, 사회 복지 시스템으로부터도 버림받으며, 아서는 점점 ‘자기 자신일 수 없음’의 고통에 빠져듭니다. 이때의 절망은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자신이 되고자 하지 않을 때 생기는 절망"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 아서는 조커라는 새로운 자아를 ‘선택’합니다. 그는 웃음을 통제할 수 없는 장애를 ‘무기’로 전환시키고, 고통과 상처를 ‘정체성’으로 끌어안으며,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과 자신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키에르케고르는 선택이란 단순한 결정이 아니라, 자기 삶 전체를 책임지는 행위라고 봤습니다. 아서의 선택 또한 돌이킬 수 없는 책임의 길이며, 그는 더 이상 무력한 피해자가 아닌, 세계와 관계 맺는 주체로 변모합니다. 조커라는 자아를 선택하는 순간, 아서는 진정한 실존의 단계를 향해 나아갑니다. 그는 더 이상 세상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삶을 통째로 받아들이며 새로운 생존방식을 만들어냅니다. 이 과정은 고통스럽지만, 키에르케고르가 말한 “절망 속에서 자아를 창조하는 실존적 결단”을 보여줍니다.

사르트르의 자유, 책임, 그리고 실존적 각성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실존주의 철학에서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는 명제로 유명합니다. 인간은 정해진 목적 없이 태어나며, 자기 선택과 행동을 통해 자신의 본질을 형성해 나간다는 주장입니다. 사르트르에게 자유란 피할 수 없는 조건이며, 따라서 인간은 자신의 선택에 절대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영화 속 아서는 처음엔 매우 수동적인 인물로 등장합니다. 그는 사회의 폭력, 타인의 시선, 현실의 불공정함에 휘둘리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점점 그는 "내 삶은 내가 만든다"는 자각에 도달하고, 그 깨달음은 조커라는 새로운 자아의 완성으로 이어집니다. 사르트르는 "우리는 선택하지 않을 자유조차 선택한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아서 또한 더 이상 침묵하거나 무기력하게 존재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기로 합니다. 그는 과거의 아서 플렉이라는 존재를 ‘버리고’, 조커로서 자신만의 자리를 창조합니다. 이 선택은 사르트르가 말한 실존적 각성의 상징이며, 인간이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의 본질입니다. 또한 조커는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합니다. 이는 사르트르가 말한 “타인은 나를 규정하는 지옥이다”라는 개념과 맞닿아 있습니다. 아서는 결국 이러한 시선의 억압을 깨뜨리고, 진정한 자아로서 존재하기 위해 대중 앞에 조커로 나섭니다. 이는 사르트르적 의미에서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인간”의 탄생이며, 그는 더 이상 규정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를 정의하는 주체가 된 것입니다.

 

영화 조커는 한 남자가 미쳐가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한 사회가 끝내 돌보지 않은 인간이 어떤 얼굴로 돌아오는가를 묻는 질문입니다. "폭력은 갑작스러운 선택이 아니라, 오래도록 외면받은 존재가 마지막으로 택하는 언어다."

조커의 탄생은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사회가 책임지지 않은 공백의 결과입니다. 그는 타고난 악인이 아니라, 끝까지 실패한 연결의 산물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그의 행동을 정당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관객에게 "우리는 이 괴물을 비난할 자격이 있는가?"라고 되묻습니다. 니체의 초인, 키에르케고르의 절망과 선택, 사르트르의 자유와 책임이라는 실존주의 철학의 주요 개념들은 조커라는 인물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납니다. 조커는 우리 사회의 그림자이며, 우리 내면 깊은 곳에 자리한 고독과 질문, 그리고 자유의 공포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영화를 보면서 우리 사회가 지금 '제2의 조커'를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